마케팅 근시안 (Marketing Myopia)
마케팅 근시안
Theodore Levitt, 1960, Harvard Business Review
“제품” 중심 마케팅과 “고객” 중심 마케팅 차이를 잘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1960년 ‘McKinsey 올해의 최고 논문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논문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현재 성장기에 있다고 생각되는 산업도 언제 경쟁 산업이 나타나서 고객을 모두 뺏어가 버릴지 모른다. 지금 팔고 있는 상품에 집중하지 말고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 필요를 충족시키려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내용이겠죠. 하지만 구체적 예로 석유, 자동차, 전기, 철도 등의 산업을 예로 들면서 각각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을 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이런 예들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무엇이 문제일까?’하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 논문이 1960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시점은 이 논문에서 얘기한 사항들이 경영에 반영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일단 상품 중심의 마케팅과 고객 중심의 마케팅을 비교한 예를 살펴봅니다.
철도 산업 : 철도 산업의 성장이 정체된 것은 승객수이나 화물 운송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철도 고객들을 다른 수송 수단, 즉 자동차, 비행기 트럭, 심지어는 전화에 뺏겼기 때문인데, 그렇게 된 이유는 철도 사업이 자신들의 사업영역을 수송이 아니라 철도라고 잘못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영화: TV의 출현으로 거의 망할 뻔했던 영화 산업이 가까스로 다시 살아났다. 영화사 중 일부는 아예 없어졌고, 나머지도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다. 영화사들도 철도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사업 영역을 영화라는 데 한정 짓고 TV를 경쟁자로 보았다는 데서 문제점이 있다. 영화사들은 실제로는 오락(Entertainment)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TV 출현이 전체 오락 산업을 키우기 때문에 오히려 환영해야 할 입장이었다.
이 예들은 상품-지향적 마케팅과 고객-지향적 마케팅의 차이를 명료하게 보여 줍니다. 우리 주변에서 가까운 예들을 찾아보더라도, 냉장고를 냉장고로 보면 상품지향이겠지만 소비자들 관점에서는 식품의 보존을 사는 것이겠죠. 전구나 형광등은 빛, 전기는 무언가를 움직이는 동력, 등등 상품이 실제로 해결해 주는 고객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위의 예들과 조금은 다르지만 고객 관점에서 상품을 보아야 하는 하나의 예로 레인컴의 MP3 플레이어인 아이리버를 들 수 있습니다. 디즈니사의 디자인을 채택해 음악을 듣는 기계라기보다 액세서리 같은 느낌으로 바꾼 후 매출이 급속도로 상승 (아마 최소 3배 이상)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조업체 측에서 첨단 기술을 도입한 첨단 전자기기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는데, 실제로 소비자들은 액세서리처럼 가방에 매달고 다니기도 하고,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하고 휴대폰 고리에 걸어두기도 하고 합니다. 거기에 착안해서 액세서리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디자인으로 바꾸었습니다.
다시 원래 논문으로 돌아와서 이 논문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적으로 비판을 하는 것이 석유 산업입니다. 석유 산업은 1960년대까지 전혀 고객 지향적 관점이 없었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여러 번 망했어야 할 산업이 외부에서 계속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는 바람에 지금까지 번창하고 있다고 합니다. 석유 사업이 망하다니?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직역은 아닙니다)
처음에 원유는 약국에서 판매하는 약으로 사용되다가, 수요가 폭발한 것은 등유램프가 개발되면서이다. 램프로 전세계를 밝히는 것을 생각하면, 전망은 아주 밝았다. 마치 지금 저개발 국가에서 자동차가 보급됨에 따라 가솔린 수요가 늘어나는 것과 같다. 그 동안 석유업체들은 등유의 조명 특성을 개선하면서 서로 경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에디슨이 백열등을 발명해 버린 것이다. 만약 그 때 등유 난방 히터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석유는 지금쯤 아마 도끼에 기름칠하는 데나 쓰이고 있을 것이다.
그 때 두 가지 충격적인 사태가 일어났는데 석유업체와는 관계가 없다. 첫째는 석탄을 이용한 가정용 중앙 집중식 난방 시스템이 개발되어 등유 난방 히터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비틀거리는 석유 산업을 두 번째 혁신이 살려주는데 바로 내연기관의 등장이다. 이 역시 외부자가 개발한 것이다.
그러다 폭발적인 가솔린 소비가 1920년대에 들어 드디어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했는데, 그 때 기름 보일러가 등장했다. 수요가 다시 정체되었을 때 전시의 항공유 수요가 석유회사들을 살려주었고, 전쟁이 끝나자 민간 항공기의 항공유 수요와 디젤 기관차의 등장, 그리고 자동차와 트럭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가 산업을 급격하게 팽창시켰다.
그 동안에 천연 가스 보일러가 석유 보일러를 대체하기 시작했는데, 석유 회사들은 자기들이 가스를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스를 활용할 방법을 찾은 것은 다른 기업들이었다. 가스 회사들은 처음에는 석유 회사들의 하지 말라는 충고를 무릅쓰고, 나중에는 저항을 무릅쓰고 엄청나게 큰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었다.
상황 논리로만 본다면 석유회사들이 가스 혁명을 주도했어야 했다. 그들이 가스를 소유하고 있었고, 가스를 다루고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파이프라인을 매설하고 전송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스가 언제건 자신들의 석유 매출과 경쟁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가스의 잠재력을 쉬쉬하고 있었다.
가스 혁명은 가스 산업을 시작하자고 도저히 회사를 설득할 수 없었던 석유회사 임원들이 나와서 가스 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가스 산업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도 석유회사들은 가스 사업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원래 자기들의 것이 되어야 할 엄청난 돈이 남의 주머니에 들어가고 말았다. 석유 산업은 특정 제품에 사로잡혀 눈이 멀어 버려, 소비자들의 보다 근본적인 필요와 선호를 알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석유회사들은 참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Levitt은 당시에 25년 뒤 (이 논문이 1960년에 발표되었으니 1985년이죠)에는 석유 산업이 철도 산업같이 과거의 영광이나 곱씹어 보는 산업이 되어 있을 것으로 예측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죠. 실제로 석유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고, 1960년에 OPEC가 결성되고 이후에 자연 내셔널리즘이 강화되면서 과거와 동일한 비교가 어렵기도 합니다. 어쨌건 산업 측면만 봤을 때 아마 석유 산업이 아직도 여전히 번창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개발 도상국들의 경제 성장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현재는 중국, 인도, 등 인구가 많은 국가들의 발전 속도가 빨라서 수요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석유도 마찬가지이지만, 모든 산업이 자기를 대체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석유는 다른 제품이 석유를 대체하였지만 계속 새로운 용도가 개발됨으로써 성장해 온 예이죠.그런 예로 드라이 클리닝 (과거 옷이 대부분 모직이었을 때와 비교하여 화학 섬유 옷이 개발되자 드라이클리닝 산업이 급속히 쇠퇴했다고 설명), 미국의 식품점 (grocery store;동네 코너마다 위치했던 체인점 형식의 점포를 의미하는 듯. 1930~40년대 유행하다 슈퍼마켓의 등장으로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등을 들고 있습니다. 전기도 위험하다고 얘기했는데, 연료 전지의 등장을 이유로 듭니다. 가정마다 연료 전지를 둘 수 있게 되면, 전력선을 먼 거리에서부터 끌어올 필요가 없다는 거죠. 이 시대에 이미 연료 전지의 개념이 있었던 것이 놀랍습니다. 어쨌건 전기는 (새로운 제품 개발로 인해) 아직도 수요가 증가하는 중이고 연료 전지는 아직 상용화의 길이 먼 것 같기는 합니다만, 전기 같은 상품도 충분히 (지금의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고) 대체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놀라게 됩니다. 요즘 많이 얘기되는 태양열 등도 마찬가지고요.
논문에서 Levitt은 ‘성장 산업이란 없다. 존재하는 것은 성장 기회를 만들어 내고 이용하도록 조직화되고 활동하는 기업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기업이 마케팅 근시안에 빠지게 되는 네 가지 위험 요소를 거론합니다.
첫째는 인구가 계속 팽창하고 부유해지면 상품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생각, 둘째는 산업의 주요 상품을 대체할 대체제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 셋째는 대량생산을 통해 급속한 단위 생산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잘 통제된 과학적인 실험과 개선, 생산 단가 하락 등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에 빠지게 되면 계속 자신의 상품을 어떻게 해서든 개선한다던가, 아니면 생산 원가를 낮추겠다던가 하는 근시안에 빠지게 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필요(need)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소비자 조사를 엄청나게 수행하면서 지속적으로 제품을 개선합니다. 그런데 그런 미국 자동차 산업이 왜 일본 및 한국의 자동차에게 안방 시장을 내 주었을까요? 여기에 대해 이 논문은 간단한 질문을 합니다. 일본의 소형 고연비 자동차가 미국 시장을 휩쓸었다면 그런 자동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는 이미 존재한 것 아니냐고 물어봅니다. 그걸 왜 깨닫지 못했을까요?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많은 소비자 조사를 하지만, 그건 자신들이 만들어 둔 자동차에 관해 물어본 것입니다. 정말로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본 건 아니라는 거죠. 비슷한 방식으로 R&D에 빠지는 위험에 대해서도 경고합니다. R&D가 잘못하면 자기 제품에만 빠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고객이 원하는 것’이란 게 상품의 어떤 면을 개선하고, 어떤 점이 마음에 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고객의 필요 및 요구 사항을 파악하라는 의미이고, 그것이 고객 중심적 마케팅이라는 게 핵심입니다. 따라서 기업은 더 나은 방식으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또 현재 상품의 새로운 용도나 활용법은 없는지 끊임없이 고객의 관점에서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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